동굴예술품은 구대륙의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으나 가장 널리 알려지고 또 오랜 연구 대상이 되어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는 것은 주로 유럽 지역에서 발견된 예술품들이다. 이와 같은 예술품들은 현재 이탈리아 지방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예술품을 간직한 동굴의 분포 밀도가 가장 높고 예술품 자체의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는 동굴은 대부분 대서양 연안과 인접해 있는 남부 프랑스의 피레네 산지와 여기에 근접한 북부 에스파냐의 칸타브리아 지방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다. 그래서 이 지역의 동굴예술품들은 보통 프랑코 칸타브리아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동굴벽화는 어떤 일정한 양식에 의해 통일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각 문화기에 따라 나름대로 그 기법과 양식으로 구별할 수 있는 변화가 있기는 하다. 오리야크 그림들을 보면 몸은 측면으로, 머리는 정면으로 묘사된 트위스트 원근법을 사용하여 강력한 율동과 생명력 넘치는 감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사실적인 양식이기는 하나 제작자의 머리에 남아 있는 영상을 표현한 것으로써, 오히려 인상주의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동굴벽화들은 그 후 마들렌 문화기에 접어들면 모든 대상물을 측면에서 정확하게 묘사하고 여러 색을 사용해 정확한 음영을 보여주는 매우 사실적인 그림으로 변한다. 한편 오리야크-페리고르기의 생명력 넘치는 힘찬 그림에 비해 정적이고 정돈된 양식화가 이루어지기 위해 시작한다. 마들렌 말기에는 동굴벽화가 일정하게 유형화 ·도식화되면서 회화 자체의 아름다움이 급격히 쇠퇴하여 사실주의적이라기보다는 상징주의적인 회화 미술로 변질해 간다. 부조나 조각 등의 동굴미술품인 경우, 그 대상이 어떤 단순한 부호일 때도 있으나 대개는 여인상 등이며, 가장 오래된 부조인 라페라시의 선각은 여인상이다. 또 소조의 경우, 곰을 만들고 그 위에 실제로 곰의 머리를 얹어놓은 특이한 예도 있다. 이러한 조각이나 부조는 초기 형태에서 부분적으로 과장된 묘사들이 많다. 이는 신앙과의 연관에서 해석할 수 있는데, '비너스 여인상'으로 알려진 부조와 조각들에서 두드러진다. 특히 임신한 여인을 연상시키는 복부와 유방 및 둔부의 과장된 표현 등은 풍요신앙과 연결해 해석되고 있다. 페리고를 ·솔뤼트레기에 걸친 여인상은 그것을 조각한 제작자의 머릿속에서 대상물이 일단 재정리되어 일종의 인상주의적인 표현으로 만들어졌지만 더욱 강렬한 감동을 주는 예술품으로 형상화한 것은, 후기 구석기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그들의 생각에 대해 매우 충실했을 뿐 아니라 일종의 신앙과 연결되는 입장에서 진실한 제작 태도를 가졌던 데 그 원인이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마들렌 문화기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부조나 조각은 매우 정교하고 섬세한 사실적인 형태로 나타나며, 그 말기에는 장식적인 요소가 더욱 짙어진다. 흔히 동굴예술품은 쉽사리 접근할 수 없는 동굴의 가장 깊은 곳에서 발견된다. 특히 동굴벽화는 같은 벽면에 여러 그림이 중복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일정한 장소가 거듭 사용된 까닭은 구석기인들의 신앙 의식이 그곳에서 행하여졌음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대개 동굴벽화나 부조의 대상물 및 그것이 그려진 상태 등이다.
벽화의 경우, 그림의 대상이 된 것은 들소 ·야생마 ·사슴 ·매머드 ·곰 ·뱀 등의 동물이 대부분이고 물고기도 때때로 발견되며, 인간은 탈을 쓰거나 특이한 몸매와 머리치장을 한 상태로만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식물도 발견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물상이 언제나 회화로서 정리된 구도를 갖추어 그려진 경우는 없고, 모든 대상물이 각각 분리된 상태로 단순한 하나의 대상물로서만 그려지고 있다. 이는 필요에 따라 수시로 미술품들이 하나씩 제작되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어떤 예술적 감정의 표현이라기보다 원시 신앙의 의식과 연관되어 제작되었다는 설명만이 가능해진다.
동굴은 그들에게 있어 신앙적인 성지였으며 그들은 거기에서 주술적인 의식을 가지고 풍성한 수렵, 종족의 번영, 그리고 수렵 대상물의 번창 등을 기원하는 뜻에서 동굴예술품을 제작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구석기시대의 동굴예술품은 일단 구석기시대의 종말과 함께 자취를 감추지만, 그 후 중석기시대 넘어오면 형태와 양식을 달리하여 주술적인 성격을 띤 의식의 산물로서 제작된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동굴예술품으로서가 아니라 거대한 암벽 또는 큰 바위 등에 그려진 새로운 형태의 미술품으로 출현하게 된다.
후기 구석기시대 예술품으로 알려진 이들 동굴예술품은 정확한 제작 연대를 밝힐 만한 자료가 드물다. 그러나 고고학 연구를 종합하면 프랑코-칸타브리아 동굴예술품들은 대략 후기 구석기시대 말기인 기원전 3만 년경에서 기원전 1만 2000년경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문화 기별로 보면 오리냐크 등의 각 문화기를 거쳐 마들렌 문화기에 이르는 동안에 제작된 것들이다. 그러나 각 동굴의 예술품은 정확히 위의 어느 문화기에 속하는지 그 연대를 확정할 만한 자료가 없기 때문에 편의상 오리야크-페리고를 문화기와 솔뤼트레기-마들렌 문화기의 2대 문화기로 구분하는 수가 많다. 이처럼 여러 문화기에 걸쳐 제작된 동굴미술은 후기 구석기시대의 작품들이며, 신생 인류에 의해 제작된 것들이다.
선사시대의 동굴미술은 한 문화기의 미술이 그 제작 기법에서 한 가지 방법만을 사용한 예는 거의 없다. 대개의 경우, 두세 가지의 기법이 함께 나타난다. 한 문화기에 속하는 동굴미술에도 단순한 회화와 선각과 등이 함께 발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때로는 조각 등이 함께 제작되기도 하였다. 칸타브리아 동굴미술은 후기 구석기시대 초기인 오리야크 문화기의 것에서부터 후기 구석기시대 말기인 마들렌 문화기에 이르는 미술품들이다. 초기 동굴벽화와 부조 등을 남긴 것은 오리야크 문화 2기이며 이때의 회화는 단순한 선으로 벽과 천장에 어떤 기호나 동물의 모습 등을 그린 것인데 비교적 치졸한 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같은 문화기에 속하면서도 후기에 이르면 한 가지 색으로 단순 채색을 한 그림으로 변화하여 일종의 프로 필화를 제작하였다. 그러나 부조와 선각 화는 단순 회화보다 더 오래된 것이 발견되며, ‘비너스 여인상’으로 알려진 선각 부조는 오리야크 문화기에 시작되어 솔뤼트레 문화기에 대량으로 제작되었다. 마들렌 문화기 중기부터는 적색 여러 색을 사용한 다채로운 사실적 회화가 동굴벽화 중에 나타난다. 그중에는 원근법이 사용된 뛰어난 작품도 있고, 또 조각작품도 대량으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마들렌 문화기 말기에 와서는 동굴예술품 중에서 회화가 갑자기 퇴화하는 현상을 보인다. 그것은 빙하시대 말기의 급격한 기후환경 변화로 인한 생활 방법의 변화와 혼란과도 관계가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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