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미술은 인체에 대한 자연스러운 동시에 이상적인 묘사의 발전, 특히 나체의 남성상을 주요 대상으로 삼은 변혁이 여러 고대 문명 가운데서도 두드러졌다. 미술 양식이 본격적으로 발달한 것은 기원전 750년에서 300년경 사이로, 그 발전 속도는 고대 수준에서 현저한 것이었다. 현존하는 작품 중에서는 조각으로 가장 잘 드러나며, 회화에서도 중대한 혁신이 벌어졌으나, 당대 수준을 알 수 있는 원본이 현존하는 경우가 얼마 되지 못한 탓에 기본적으로 추정의 영역이며, 논외로 그리스 도기 회화의 경우 별도의 분야로 잘 남아 있다.
오늘날 고대 그리스 미술 작품의 현존 비율은 매체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 도기와 화폐는 수량이 넘쳐나는 수준이고, 로마 시대의 복제품이 더 많다고 하는 석조품의 경우도 적잖게 남아 있으며, 대형 청동 조각품도 몇 가지 전해진다. 반면 회화나 청동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며, 목제품을 비롯해 썩기 쉬운 재질로 만들어진 미술품은 전무하다. 건축의 경우, 신전이나 극장을 중심으로 그 외형은 지금까지 전해진 것이 많지만 대형 장식이나 부조는 남아있는 것이 적다.
그리스 건축은 기술적으로는 단순했으나 세세한 관습으로 조화로운 양식을 수입하였다. 이는 곧 로마 건축에서 차용되면서 서양 건축의 근원을 이루었으며, 일부 현대 건축에서도 여전히 남아 있다. 건축에서 사용된 장식은 되기, 공예 등 다른 매체와 공유하였으며, 알렉산더 대왕이 그리스 세계의 지평을 넓히고서 그리스 양식을 받아들인 불교 미술의 전래로, 유라시아 미술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이러한 발전의 사회적 배경에는 고대 그리스의 급격한 정치 발전과 상당한 경제 번영이 있었으며, 철학이나 문학 등의 분야에서 대단한 성취를 이룬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태초의 그리스 미술은 '고대 그리스 미술'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며, 그리스 신석기 미술과에 미술이 해당한다. 에게 미술은 키클라데스 미술과 미노아 미술, 미케네 미술 등 에게 문명의 문화를 아우른다. 이 시기를 지나서 시작되는 고대 그리스 미술은 양식에 따라 크게 기하 학기, 고졸이, 고전기, 헬레니즘기의 네 가지 시대로 구분된다. 기하 학기의 시작점은 기원전 1000년경부터 잡는 것이 보통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처음 200년간의 미술에 대해서 알려진 것이 적기 때문에 이를 그리스 암흑기로 칭한다. 기원전 7세기에 이르면 고졸이 양식이 서서히 발달하는 모습을 보이며 흑 회식 도자기 회화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후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을 목전에 둔 기원전 500년부터 고졸 기에서 고전기로 넘어가며, 기원전 330년대 알렉산더 대왕의 집권기부터는 고전기가 끝나고 헬레니즘기로 접어들게 된다. 헬레니즘 시대가 끝난 이후에도 시각에 따라 기원전 1세기경을 '그리스와 로마기'로 부르는 등, 동부 그리스 세계만을 한정하기 위한 시대 구분도 존재한다.
고대 그리스 미술을 네 시대로 구분할 때의 주의점은, 다른 시대로 넘어가는 전환기라 하여 실제로도 급격한 변화가 벌어지는 일은 없었다는 점이다.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미술 양식의 발달은 일관된 것이 아닌, 지역마다 각기 다른 속도로 이뤄졌으며, 특정 시대라 하더라도 어떤 예술가들은 다른 이들보다 획기적인 양식으로 작업한 경우도 존재했다. 또 확고한 지역 전통과 현지 교단의 요건이 각 예술 작품마다 드러나기에, 출신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는 것이 고대 그리스 미술이다. 한편으로 고대 그리스 미술은 다양한 제품으로 제작되어 널리 수출되었으며, 이를 통한 고대 그리스 세계와 주변 문화권 사이의 교역과 번영은 온 시대를 통틀어 대체로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어 나갔다.
로마인은 기원전 8세기경부터, 티베리스강변에 가까운 팔라티노의 언덕을 중심으로 일곱 개의 언덕에 살며, 기원전 753년 공동체에 의한 도시국가 로마를 건국했다고 전해진다. 그 후 로마는 일시 에트루리아의 지배 아래 놓였으나 기원전 6세기 초에 그들을 추방하였으며, 다시 인접 여러 나라를 제압하고, 기원전 3세기에는 이탈리아반도 전역을 지배했다. 그 세력은 기원전 2세기 중엽에는 지중해 전역에 미쳤다.
로마 미술은 북방의 에트루리아 미술과 반도 남부의 그리스 식민도시 미술의 영향을 받아서 싹이 트고 발전한 것이다. 로마는 현실적·행동적인 요소를 에트루리아인으로부터 받아 계승하면서 그리스적 형식을 모방했다. 로마의 미술에서 보이는 사실주의의 형태는, 신전 건축과 조각·회화 등에 있어서 그 형식을 그리스에서 찾으면서도, 그 정신에 있어서는 에트루리아적이다. 처음에는 에트루리아의 영향에서 출발했지만 말기 이후 헬레니즘 세계와의 접촉을 통해 얻은 그리스의 영향은 로마 세계를 풍미하고 소위 '그레코로만 시대'를 가져오게 했다.
기원전 2세기 후반에 그리스를 정복한 이래, 매우 많은 수의 그리스 조각이 로마로 운반되었다. 다수의 그리스 예술가가 로마에 초빙되어 그리스 명작을 모방했다. 청동의 원작은 대리석에 되새겼고, 그것들은 로마인의 취미나 헬레니즘 시대의 자연주의적인 경향으로 약간 변경되어 갔다. 회화에서도 이 경향은 같아서, 폼페이의 벽화에도 헬레니즘 회화의 모방과 비속화가 눈에 띈다. 로마 시대에 개성적인 초상 조각이 발달하고, 거대하고 실용적인 공공 건축이 서로 이어서 건조된 것도 헬레니즘 시대 정신과 에트루리아적 정신과 융합의 결과이다. 로마 미술은 이 두 개의 요소를 기반으로 하여 발전한 것으로서, 그 특징으로는 국가 권력에 수반하는 지리적 확대에 상응한 규모의 크기, 주제의 다양성, 사실성 등을 들 수 있다.
건축이나 조각처럼 회화에서도 기원전 1세기 이후 많은 그리스 화가가 부유한 로마인을 맞이하게 되어, 그들의 저택이나 별장을 꾸몄다. 프레스코 및 모자이크에 의한 그들의 화풍은 헬레니즘 시대의 정신을 반영하고, 감각적이며 신비적이고 산문적인 주제가 사실적 기법으로 그려져 있다.
로마의 회화는 헬레니즘 회화의 수용에서부터 시작한다. 헬레니즘 회화의 원작은 헬레니즘의 여러 지역에서는 거의 잔존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원후 79년에 일어난 베수비오산의 분화로 돌연히 매몰된 폼페이 및 헤르쿨라네움에 남아 있는 벽화를 통하여 헬레니즘 시대 및 로마 시대의 회화를 알아낼 수가 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궁정 화가인 필록세노스의 걸작을 모자이크로 한 작품이 있는데 이것은 고전 말기의 양식을 전하는 귀중한 작품이다. 프레스코로 된 유명한 폼페이나 나폴리 미술관은 헬레니즘 시대의 양식에, 이탈리아적인 취미를 가미한 새로운 양식이었다. 디오니소스의 밀의는 당시 이탈리아에서 믿었던 밀교인데, 화려하고 붉은색의 배경에 신앙생활의 신비적인 경향이 묻어나 있다. 그리고 에서는 아르카디아를 상징한 거대한 여신의 발밑에서 텔레포스가 무심하게 사슴의 젖을 마시는 자태와 그의 아버지 헤라클레스의 강인한 자태가, 인간적 감정을 혼입하여 회화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또 인간 중심적인 그리스에 있어서는 대개 생각할 수 없는 풍경화 하는 새로운 장르가 이 시대에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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