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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로코코 미술

by garchive 2024.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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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코코는 18세기 프랑스에서 생겨난 예술형식이다. 어원은 프랑스어 rocaille 조개 무늬 장식에서 왔다.

로코코는 바로크 시대의 호방한 취향을 이어받아 경박함 속에 표현되는 화려한 색채와 섬세한 장식, 건축의 유행을 말한다. 바로크 양식이 수정, 약화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로코코는 왕실 예술이 아니라 귀족과 부르주아의 예술이다. 다시 말하자면, 유희와 쾌락의 추구에 몰두해 있던 루이 14세 사후, 18세기 프랑스 사회의 귀족계급이 추구한, 사치스럽고 우아한 성격 및 유희적이고 변덕스러운 매력을, 그러나 동시에 부드럽고, 내면적인 성격을 가진 사교계 예술을 말하는 것이다. 귀족계급의 주거환경을 장식하기 위해 에로틱한 주제나 아늑함과 감미로움이 추구되었고 개인의 감성적 체험을 표출하는 소품 위주로 제작되었다. 

좁은 의미에서 로코코란 루이 15세 시대에 유행하던 프랑스 특유의 건축의 내부 장식, 미술, 생활 용구의 장식적인 양식을 의미한다. 후에 이 국한된 의미를 벗어나 예술사를 연구하는 이들 사이에서 후기 바로크를 이어주는 건축과 서양미술의 한 예술 양식으로 쓰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로코코는 바로크나 르네상스처럼 한 시대를 대표하는 사조라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18세기는 로코코 뿐만 아니라 바로크, 고전주의, 낭만주의가 병존하는 시대이며, 이 시기에 유행하고 나타난 예술 양식들은 서로 간에 영향을 받고 주는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건축물로 상수시 궁전이 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에도 퍼져나갔다. 로코코라는 말은 프랑스어의 로카유에서 유래한다. 본래는 당시 귀족사회의 생활을 미화하기 위하여 고안된 장식 양식 내지 공예품에 대하여 쓰인 말이었으나, 나중에는 이 시대의 프랑스 미술, 나아가서는 유럽미술 전반에 걸친 양식개념이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그 어원에서 오는 조소적인 의미는 불식되고, 독자적인 형식 감정과 이에 부응하는 창조적이며 자율적인 가치를 가진 미술 양식으로 평가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로코코는 그에 앞서는 바로크 미술이 즐겨 쓰던 부정형이나 유동적인 조형 요소를 계승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바로크의 연장 및 변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다만 바로크가 지녔던 충만한 생동감이나 장중한 위압감 따위가 로코코에서는 세련미나 화려한 유희적 정조로 바뀌었는데, 다시 말하면 바로크가 남성적 ·의지적임에 비하여 로코코는 여성적 ·감각적이라고 할 수 있다.

로코코의 특색은 그 말의 어원인 로커 유가 조개껍데기 세공이나 모양을 가리키고 있음에서 알 수 있듯이 장식미술, 특히 실내장식이나 가구류에 가장 현저하게 나타난다. 실내의 각 부분 또는 가구의 형태 등에 조개 모양이나 아칸서스무늬가 도입되고 혹은 그것들의 조합이라고 할 만한 곡선 무늬가 뒤얽혀 물결친다. 건축가들은 당시의 살롱 문화를 배경 삼아 이런 곡선을 활용하여 실내 공간 자체를 원형적인 멋으로 처리하고 벽과 천장의 연결부분 또는 벽과 벽의 연결부분에도 분절이 드러나 보이지 않는 구조를 고안했다. 직선 ·직각을 가능한 한 배제하여 부드러운 곡선이 자유롭게 교차하도록 만들고 벽이나 천장의 색채도 담백하고 우아한 색조, 예컨대 흰 바탕에 금색으로 곡선 무늬를 안배하는 것 같은 배색을 즐겨 사용하였다. 이런 것은 바로크가 지닌 중후 성이나 오만성과는 다른, 경쾌하고 화려한 취향이며 로코코의 특색은 어디까지나 회화적이고 평면적인 데에 있다.

로코코의 실내장식은 실내에 있는 그림 ·조각 ·공예 ·거울, 그 밖의 모든 것을 하나의 기조 위에 통합, 조화하려는 것이었으므로 그 특색은 공예품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가구나 집기류는 모두 경쾌하고 우아한 형태와 무늬로 만들어지고, 자기에도 지나치게 도안화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인간이나 식물의 형태 ·무늬가 활용되었다. 좌우대칭의 전통이 깨지고 애 시 메트릭 한 자유로운 디자인이 등장하였다. 이것은 그 당시 유럽에 유행하였던 중국 취미와 더불어 동양 공예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시대는 또 회화가 번성한 시대이기도 하였다. 단지 귀족들만이 아니라 서민층에도 회화 취미가 침투하여 전람회를 통하여 화가와 대중의 교류가 이루어지고 미술평론이라는 새로운 장르도 나타났다. 엄격한 데생을 주장하는 푸셍파(구파)와 색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루벤스파의 대립을 거쳐 이 무렵에는 이미 신파의 승리가 결정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경쾌한 필치와 풍요한 색채에 의한 화려한 구도와 정서적인 표현 방식 등이 주류를 이루었다. 신파 외에 베네치아파도 높은 평가를 받았고 색채와 함께 풍속화의 양식도 유입되어 사실적 표현이 애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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